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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면서

지난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 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코드 포 아메리카의 2014 써밋의 후기입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안 갔어도 읽고 나면 마치 갔다온 것 같은 후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코드 포 아메리카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할게요. 코드 포 아메리카 (이하 CfA) 는 관과 민이 협력해 기술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입니다. 한국 내에서 비슷한 시빅 해킹 (Civic Hacking) 활동을 하는 코드나무/코드 포 서울과는 협력적인 네트워크 관계에 있어요.

때는 2014년 초… 한국에서는 코드나무가 국내의 각종 오픈 활동을 도맡아하는 CC Korea 내의 스터디 프로젝트로 시작 되었고, 해를 거듭하며 국내 시빅 해커(Civic Hacker)들의 모임이 되어가고 있었구요. 미국에선 CfA가 펠로우십(1년 간 시민 편의를 위해 일할 기술자와 시를 매칭해주는 프로그램)과 브리게이드(펠로우십과는 별개로 각 도시에서 시정 개선을 위해 시빅 해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 그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CfA가 미국 내 도시들에서 확장해 전 세계 도시에서 시빅 해킹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어요. 이름하야 코드 포 올(Code for All). 이미 해당 활동을 하고 있던 코드나무 내의 활동가들이 여기에 흥미를 가졌고, CfA 측에 연락해 ‘코드 포 서울’이라는 이름을 얻어 코드나무라는 우산 아래 워킹그룹 프로젝트를 런칭하게 되었다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짧게 족보 정리 해봤습니다. ㅎㅎ

이번 써밋의 슬로건은 “Government can work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in the 21st century. Let's make it work.” 였습니다. 우리 말로 해석하면 “21세기 정부는 시민을 위해, 시민에 의해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함께 실현해나갑시다.” 정도가 되겠네요. 민주주의를 잘 설명하는 링컨의 명언에서 따온 것과 같이, 시빅 해킹의 가장 큰 의미는 시민이 참여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기술을 이용한 행동 참여형 민주주의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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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의 메세지, 키노트 요점 정리

이번 써밋에선 총 다섯 번의 키노트가 있었어요. 간단 요약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돌아온 CfA의 CEO 제니퍼 폴카(Jennifer Pahlka)가 첫 번째 키노트로 써밋의 문을 열었습니다. 폴카는 CfA의 설립자이자 초대 CEO였고, 최근 몇 년 간은 백악관 과학 기술 정책 부CEO로 일하다 얼마 전 CfA로 복귀했어요.

폴카에 의하면, 시빅 해킹 활동은 크게 정부, 기업, 시민들(커뮤니티) 세 명의 플레이어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 셋이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합의해나가는 과정에서 임팩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구요. 공공 데이터 개방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관에서 투명성을 위해 개방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업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 실제 임팩트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측정이 무의미한 성과를 만드는 것보다 이용자, 더 나아가 사람이 우선이란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하며 존 솔로몬(John Solomon)의 People, Not Data 라는 글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미국 사회에서는 민과 관 사이의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큰 이슈라는데요. 작년 CfA 써밋 즈음에 미국은 국회와 정부 셧다운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고, 올해에도 퍼거슨 시에서 경찰의 총에 흑인 소년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며 공권력 대 커뮤니티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는 없는 법. CfA에서는 사회 문제에 좀 더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보건, 안전 및 사법, 경제 발전 분야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첫날 저녁 키노트는 전 영국 와이어드 (Wired) 기자이자 현 영국 정부 디지털 서비스 (GDS) 소속인 톰 루스모어가 “Digital Government: Not Complicated, Just Hard”라는 희망 고문 같은 제목으로 진행했습니다. 사실 굉장히 실용적이고 좋은 발표였어요.

루스모어는 시빅 해킹 활동이 간과하기 쉬운 지점을 지적하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기술 혁신으로 기존 정부의 과정들을 무시하고 무작정 앞장서 나가는 것인데요. “We’re not here to change government website. We’re here to change government.” 라고 말하며 정부가 제 기능을 되찾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현재의 문제를 압축하면,

예산 부족(Budget) → 이용자 불만족(Unhappy internal users) → 보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쓸데 없이 많은 정보를 요구하게 하고 복잡한 과정을 만듦(Mythology in security) → 정부 발주 국책프로젝트와 수주하는 업체의 문제(Procurement) → 영원히 고통 받는 모두…

이런 상황인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Shape: 현재 정부는 수직 구조이나, 플랫폼으로서의 정부가 되려면 수평 구조로 탈바꿈해야 한다.
Language: 스토리텔링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서비스에 들어가는 ‘필수사항’이란 말 대신 ‘이용자 니즈’로 바꿔 말해버릇하면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환기 된다. 더불어, 오랜 준비 끝에 한 번에 런칭하기보다 알파, 베타 버전을 내서 이용자 피드백을 반영해야 한다.
Process: 기존 관의 방식은 “정책 수립 → 사업 필요사항 정리 → IT 회사에 외주 맡김 → 서비스 런칭 → 대부분 실패” 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의 순서 자체가 관의 위계 그 자체다. (정책은 깊은 리서치 없이 만들고 실무자는 정책에 참여하지 못하고…) 각 과정마다 서로 다른 부서가 맡아 진행하는 것도 문제. 루스모어가 새로이 제안하는 방식은 “시민 니즈 발견 → 알파 베타 버전 출시 → 공공 서비스 기준에 맞는지 정부에서 검토 → 런칭 → 활성”의 방식. 이용자 피드백이 정식 서비스 런칭 전까지 끊임 없이 순환해 반영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덧붙여, 혁신적인 공공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는데요. 일단 팀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작업 공간을 확보하고  능력 있는 개발, UX, 정책 등 분야 전문가로 작은 팀을 만들어서  팀에게 정책 의도를 충분히 주지시키고 (gov.uk/designprinciple 참고)  팀이 이용자 니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내버려둔 다음 (실무 외 레벨에서 자꾸 참견하면 그르칩니다)  심플함과 실용성에 집중하면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둘째날에는 공공 IT에서 40년 넘게 일해온 백발의 베테랑 공무원, 알도나 발리센티 (Aldona Valicenti) 가 키노트를 맡았습니다. 40년의 경력 동안 97년도 전자정부 전환 시기에 정치인 포함 관을 설득해서 개혁을 이뤄낸 경험이 있고, 저번 텀엔 코드포 펠로우와도 협력했다고 하네요.

발리센티의 발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빅테크의 민과 정부기관 등의 관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대해 다뤘어요. 끝까지 쭈욱 들어봤을 때, 같은 공무원들에게 시빅 테크의 중요성에 대해 호소하는 톤이었어서, 대상은 ‘시빅 테크에 도전할까 말까 하고 있는 관 사람들’ 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민과 관이 어떻게 다른지 가볍게 비교한 내용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에 있어서, 관은 보안에 대한 염려 때문에 공개를 꺼리고, 시빅 테크는 오픈 데이터를 원한다- 정도의 차이점들을 나열했지요. 그러나 요지는 시빅 테크의 유용성이 시민 편의에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에, 민의 이런 노력을 관에서 받아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이런 협력을 어떻게 이뤄가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남는데요. 발리센티는 민관이 협력해 앱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예로 들어 1. 공동의 목표 설정 → 2. 정책적 및 서비스적 필수 사항 체크 → 3. 목표 완수 → 4. 협력 → 5. 정직한 피드백 → 6. 지속적인 참여 의 과정을 제안했습니다. 위의 루스모어가 제안한 과정보다는 조금 더 관 위주의 시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시민들은 민간 서비스들을 기준으로 요구하고, 공공은 따라간다. 필연적으로 민간보다 기술 발전은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피드백이 순환 되고 지속적인 소통과 참여가 있다면 공공의 문화도 바뀔 수 있다.’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로 발표를 마무리했어요.

 

삼일 째, 마지막 날 낮에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수잔 크로포드 교수의 새 책 소개 겸 키노트가 있었습니다. 2013년 연초부터 한국에 왔다가 CC Korea에 코가 꿰어(!) ‘인터넷을 둘러싼 권력전쟁’ 특별 포럼에 연사로 서기도 했죠. (포럼 후기)

예전에 오바마 행정부의 기술 특보를 지내기도 했던 크로포드는 특히 국가적인 망 구축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이번 책도 그런 관심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현재 일반 인터넷에서 광통신망(Fiber Optic)으로 바뀌는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서,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수많은 혁신적인 서비스들이 나타나고 소통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미국은 수많은 웹서비스 기업들의 파워에 비해 한국보다도 못한 인터넷 인프라로 악명이 높았는데요, 최근 대학가와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광통신망이 깔리며 여러 가지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참고로 벨연구소는 실험 중 최고 속도가 100 페타비트(1000 테라비트)를 기록했다고도 하네요. 광통신망, 데이터, 스크린이 도시를 바꿀 것이며, 이번에 출간한 ‘The Responsive City’는 지도이기보다 컴퍼스로서, 도시가 인프라 구축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크로포드는 특히 시빅 해커들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민들은 자기가 사는 도시를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열망이 있다며, 이들을 지지하는 의사를 보였습니다. 또, 본인 같은 법조인들이 좀 더 이런 써밋에 참가하기 바란다며 데이터 공유나 프라이버시 vs. 감시 등의 이슈를 법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는 인재들이 필요함을 강조했어요.

 

대망의 마지막 키노트는 모질라의 전 CEO 존 릴리(Jon Lilly)가 "140 Characters, Not Flying Cars" 란 제목으로 맡았습니다. 제목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투자가 피터 티엘이 했던 말인데요. ‘20세기 SF 영화를 보면 2014년 쯤엔 우리는 인류가 날아다니는 자동차 같은 걸 만들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트위터 140자ㅋ’라고 불평하는 우스개소리를 한 것에서 따왔습니다. 릴리는 이 멘트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데 그 이유는요, 순수 과학 및 순수 공학의 혁신만이 인류의 혁신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 되고, 누구나 매체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굉장히 혁신적인 일이라는 거죠. 아예 ‘소통의 진보란, 그 외의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The communication advances are what makes the rest possible)’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소통 분야의 혁신은 곧 우리가 연결 되고 살아가는 시스템의 재설계와도 같다고도 했습니다. 종이가 처음 발명됐을 때, 인쇄가 발명됐을 때, 인터넷이 발명됐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설계(architecture)가 달라진 것처럼요. 릴리의 절친인 EFF의 밋치 카포어(Mitch Kapor)는 이런 설계가 곧 정치다(Archtecture is politics)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팀 오라일리(Tim O’reilly)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오픈소스나 웹은 아예 시스템 설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참여형’으로 만들어져있고, 이런 시스템이 공공의 영역에도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릴리는 사람들의 참여를 어떻게 설계하냐에 따라 커뮤니티가 통째로 달라질 수 있음은 순수 기술 뿐만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가 중요한 이유라고 하며, 끝으로 ‘여기에 모인 우리들이 바로 그 설계자다. 기술자 뿐만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고 기술을 설계하고 공공을 설계하는 우리 모두가 메이커이다’ 라며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트윗 언급과 기립 박수로 감동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